
세상이 뒤집힌 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던 신생 기관 판도라는 꾸역꾸역 자리를 잡아 무너지지 않을 기반 정도는 갖추었고 쓸려나갈까 걱정될 정도로 많았던 업무도 숨을 돌릴 정도로는 줄어들었다. 여전히 야근을 해야 하는 건 같았지만, 직원들은 우는소리를 하긴 해도 저마다의 일을 잘 처리해주고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살아가는데 있어 이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잖은가. 들인 노력 대비 돌아오는 것이 적은 일에 매달리는 건 자신을 깎아 먹는 일이니 권장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모여주었다. 당장 양심을 버리면 저 하나만은 풍요롭게 살 수 있음에도.
때문에 쥬세페 드래그나는 판도라를 사랑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자신의 미숙한 부분을 보완하고 같은 꿈을 꾸려 노력해주는 사람들을. 언젠가 새로운 꿈을 이루겠다며 떠나더라도 이제까지의 희생에 감사하며 보내줄 정도로는 말이다.
그래, 그는 제 곁에 있던 사람이 떠나는 일에 미련을 갖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행복이 자신의 자리에 있지 않음에 미련을 갖지 않고 흔쾌히 떠나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순수히 타인의 행복을 바라는 이타주의. 너무나 현실적이지 못해 위선이라 손가락질해도 이상하지 않은 순수한 사랑. 그는 사람이라는 본질을 그렇게 사랑했다. 마치 어떤 초월적인 존재라도 되려는 것처럼.
정작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던가 가진 바 능력이 모자란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명목이 하나 있었다. 그는 제 사랑과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사랑을 고를 이였다.